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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운동이 절정에 이르렀던 1980년대에 이에 대한 반동의 문화적 흐름이 생겨났다. ‘백래시’(아르테)의 저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수전 팔루디는 이것을 ‘백래시’로 이름 붙였다. 페미니즘에 피로감을 느낀다, 여성주의가 남녀관계와 가족을 붕괴시켰다, 커리어우먼은 자신과 가족을 불행하게 한다, 여성운동으로 남성들이 손해 보고 있다 등등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다.
저축은행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도 예외가 아니었다. 남성 누리꾼들의 수많은 저주와 협박이 있었고, 지적 언어로 포장된 남성 지식인들의 우려와 경고도 있었다.
2002년 이프의 창간 5돌 기념호가 만들어지던 즈음 1990년대 주류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김규항씨의 글이 ‘씨네21’에 연달아 실렸다. 그는 자신을 비(B)급 좌파라고 말하 현대캐피탈아파트전세대출 는 진보 지식인이었다. ‘김규항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칼럼난의 ‘그 페미니즘’(349호)과 ‘그놈들과 그년들’(352호)에서 그는 당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을 “급진주의의 극단적 통속화”라고 비난했다.
두편의 글을 그의 말로 정리해 보면 이렇다. ① 1990년대 새로운 페미니즘으로 등장한 이프는 작가, 언론인, 교수 등의 중산층 인텔리 중도상환 방법 여성들로 구성된 부르주아적 여성해방론자들로, ② 하층계급 여성들과 인간해방 운동에 관심 없어서 오직 ‘나만의 해방’을 추구하며, 마초적이고 나른하고, 카타르시스적 복수극에 지나지 않는 주장을 한다. ③ 이들은 인간해방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협력하던 ‘건전한’ 여성운동 집단과 배치되며, ④ 보편적 인간해방 운동으로 가는 길을 차단하기 때문에 반드시 솎아내야 삼성생명 주택담보대출 한다.
상당히 공격적인 글이었지만 우리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글을 “좌파 남성 최초의 페미니즘 비판”이라고 의미 부여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좀 식상해진 레퍼토리였다. 2002년 이프 여름호에 나와 함께 반박 글을 썼던 당시 스카이라이프 편집장 김미경씨는 “좌파 남성들의 부르주아 페미니즘 비판은 80년대에도 참 만만찮고 살 연말정산무직자 벌했으며, 여성운동계는 그들의 정당성에 잔뜩 주눅 들어 있었다”(김미경, 무식해서 용감했던 김규항에게 꾸벅!)고 회고했다.
여성운동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학생운동도 1980년대 초반에 생겨난 여학생 운동을 견제하고 통제하려 했다. 힘의 분열을 막기 위함이 이유였지만 그 당시 여학생들은 누구보다 치열하게 학생운동에 헌신했다.
“나는 80년대 전반부에 대학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대부분의 양심적인 운동권 여학생들이 그랬듯이 … 대학생이라는 부르주아적 존재 기반을 지워가며 노동자, 농민 해방을 부르짖었던 나는 계급 우선 논리를 암기하고 숙독하면서 더욱더 여성의 수동성을 강화해갔다. 나 자신의 행복과 해방을 포기하면서 타인의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일은 남자들보다 훨씬 익숙하고 쉬운 일이었다.”(박미라, 자칭 ‘B급(실제 D급) 좌파’ 김규항에게)
내가 쓴 이 반박 글은 나의 개인사, 그중에서도 학생운동 경험에서 시작됐다. 김규항씨는 우리가 개인의 해방을 구하는 부르주아라고 비판했지만 여성주의에서 개인은 중요하다. 페미니즘은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해방은 여성이 진정한 개인으로 독립하는 것을 추구한다.
아무튼 나는 대학에서 인간해방 운동에 투신하는 것으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대부분의 운동권 여성들이 그랬다. 사회운동, 인권운동에 참여했던 여성들이 여성운동을 시작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여성운동은 기존의 인간해방 운동에 전적으로 소속될 수 없는 특수성을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니까 이프의 페미니즘은 새로운 흐름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낯선 무엇이 아니었고, (김규항이 말하는) ‘건전한’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반성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페미니즘의 특수성을 인정받기를 원했고, 진보 진영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자유롭고 유연하기를 기대했지만 20년이 흐른 2000년에도 낡은 주장이 반복됐다.
“‘페미니스트 여성 가운데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좇는 부르주아가 실재한다’고 김규항씨는 말한다.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이라는 말이 도대체 성립이라도 되는 말인가? 여성이 바로 인간인데 여성이 해방되는 것, 흑인이 해방되는 것, 동성애자가 해방되는 것, 모든 억압에서의 해방 해방 해방 해방들이 합쳐지고 뭉쳐져서 최종적으로 인간해방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도대체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어떻게 좇는단 말인가? 인간해방 없는 여성해방을 좇는 방법을 알면 좀 가르쳐주라.”(김미경, 무식해서 용감했던 김규항에게 꾸벅!)
남성들이 의심스러운 색안경을 끼고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데는, 운동세력의 분열을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지만 여성비하적 시선이 더 근본적이었을 것이다. 이프의 주장을 맹랑하고 미숙하고 철없는, 마초이즘이나 흉내 내는 목소리로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다 개인의 욕망을 채우려 하고, 주류사회에서 성공하지 못한 화풀이나 하는 세력으로 비쳤으니 위험천만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1990년대 우리는 집단에 소속된 부품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개인으로서 집단을 이루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가장 자기다운 것, 가장 자유로운 것,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을 찾고 실험하고 심화시키고 있었다. 가장 나답게 집단에 기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수많은 내적인 비판과 자성을 통해 성숙해 가고 있다. 보수 논리가, 그를 비판하면서 생산된 진보논리를 이길 수 없듯이 좌파 진보를 극복하고 만들어지는 페미니즘 이론을 함부로 비판할 수는 없다. 우리가 다소 몽환적으로 보이든 말든, 우리가 다소 나른해 보이든 말든, 우리가 맹랑해 보이든 말든, 우리가 마초적으로 보이든 말든 결국은 우리 스스로 균형을 잡아갈 것이다.”(박미라, 자칭 ‘B급(실제 D급) 좌파’ 김규항에게)
소외된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프는 그 출발점을 나 자신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행복해야 주위 사람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지금은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 운동권은 감히 개인의 행복을 언급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운동권의 근엄주의를 깨고 우리가 먼저 웃고 놀고 행복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지워 가면서 남을 위해 살지는 않기로 작정한다. 수많은 딸들이 희생적인 엄마를 향해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라고 외쳤듯이 나의 희생으로 남을 행복하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모순된 사실인지 깨닫는다. 그보다는 나의 행복으로 타인이 행복해질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우리 여자들은 아직도 좀 더 이기적이어야 한다.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 타인을 행복하게 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복을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사람들이 행복을 챙기지 못하는 사람을 도울 수도 있다. 자신의 권리를 행사해 본 사람만이 무시당했을 때 분노할 수도 있다.(김규항처럼!)”(박미라, 자칭 ‘B급(실제 D급) 좌파’ 김규항에게)
고백하자면 우리는 그 당시 무척 가난했다. 유숙열 선배는 자신이 모아둔 통장을 몽땅 털어 잡지 발행의 초기자본으로 삼았고, 우리는 월급의 많은 부분을 떼어 이프 제작비에 보태야 했다. 우리의 열혈 독자들은 대부분 비혼의 젊은 여성들로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 나는 편집장으로 매달 동료와 후배들의 다음달 월급을 마련하느라 피가 말랐다. 우리의 꿈은 박봉을 받더라도 이프를 평생직장으로 삼는 것이었다. 물론 그 꿈은 얼마 가지 못했지만….
모든 진보하는 세력은 반동의 힘에 부딪힌다. 우리는 경제적 어려움과 싸우면서 우리의 목소리를 지키려고 노력했고, 동시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백래시의 힘을 견뎌야 했다. 그런데 그것을 진지하고 결연한 투쟁으로 하지 않고, 웃고 놀고 뒤집으며 하고자 했다. 자신의 욕망을 찾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그런 우리를 마초적이라든지, 나른하다고 평가했지만 우리는 사실 그때 결사적으로 그렇게 했다. 우리의 가장 큰 욕망은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해져서 타인에게 자신 있게 연대의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2002년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여름호(21호)에 창간 5돌 기념 프로젝트로 실렸던 ‘피메일 게이즈’ 시리즈의 일러스트 중 하나로 ‘이프의 욕망’을 주제로 했다. 21호엔 ‘한가한 부르주아 페미니즘’ 논란에 대한 반박글이 실렸다. 이프 제공, 페미니스트 아티스트 그룹 입김



박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