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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취사와 야영을 하며 걸을 수 있는 장거리 길, 동서트레일이 시범 개방됐다. 흥주사 대피소에서 만든 화식과 비화식을 섞은 식사.


1991년 초. 산림법 개정안이 시행되며 전국의 산에서 취사행위가 금지됐다. 화기를 소지조차 하지 못하게 만드는 엄격한 법이었다. 물론 암암리에 취사하는 산꾼들은 많았다. 단속도 어려웠다. 스마트폰이 있 국민은행마이너스통장이율 던 시절이 아니라 인적사항을 허위로 대서 벌금고지서를 회피하거나, 그냥 단속에 불응해도 경찰이 아닌 공무원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그 이후에도 암암리에 취사하는 산꾼들이 계속 이어졌다. 다만 전과는 조금 양상이 달랐다. 야유회처럼 산에 와서 취사하며 놀다 가지 않고, 숨어서 했다. 특히 겨울이나 1박 이상 야영하며 장거리 종주 소상공인창업자금대출 를 하는 경우에 한해선 취사가 필연적이라고 여겨지곤 했다. 국립공원에서만 안 할 뿐이었다.
나름 산꾼들도 불만이 있었다. 법이 현실을 못 따라온다는 항변이다. 자연보호를 위한 무분별한 취사금지는 분명 받아들일 만하다. 하지만 특정 산이나, 산불방지기간을 택하는 것도 아니고, 허가제도 없이 아예 365일 모든 산에서 다 금지시킨 것은 과하다 국민은행 계산기 고 봤다. 특히 취사야영금지 조치와 비슷한 시기 이뤄진 해외여행자유화 조치가 이런 불만을 더 부추겼다. 해외 원정을 나가면 트레킹하면서 취사하는 것이 당연했고, 대부분의 장소와 기간 중 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가 터졌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반화되면서 백패킹이 급격히 인기를 끌게 됐다. 지난 30년의 양상을 몰랐던 이들이다. 또 해운대자연산 30년간 산에 있던 이들은 바깥의 여론을 몰랐다. 이 둘이 만나자 순진하게 SNS에 취사 장면이 고스란히 노출되곤 했고, 그럴 때면 매몰찬 여론의 뭇매를 맞는 사건이 몇 번 되풀이됐다. 백패킹 사진이 올라오면 모두가 매의 눈으로 장비 중 이소가스나 버너, 스토브가 있는지 검열하는 시대가 됐다.
현재, 취사금지 조치 35년 만에 합법적으로 nh주택공사임대아파트www.lh.or.kr 취사하면서 걸을 수 있는 첫 장거리트레일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동서트레일이다.



동서트레일은 지역과 지역을 잇는다. 그렇기에 푸근한 시골 마을길이 많다.


11월 중 시범 운영
동서트레일은 안면도에서부터 울진까지 약 850km의 걷기길이다. 산림청은 2027년 전체 구간 개장을 목표로 이번 11월까지 일부 구간을 시범 운영한다. 지금껏 만들어진 장거리 걷기길들과 다른 점은 길 중간 중간에 취사를 할 수 있는 야영장을 조성해 놨다는 점이다.
이 야영장의 공식적인 이름은 '대피소' 혹은 '간이 대피소'다. 야영장, 백패킹 스팟, 박지 등으로 불러도 크게 무리는 없는 공간들이다. 어느 곳은 그냥 노지에 텐트 칠 자리 몇 개 만들어둔 곳도 있고, 어느 곳은 취사장까지 구비된 야영장이기도 하다. 산림청 담당 주무관의 당부는 이렇다.
"이번 시범 운영은 어디까지나 테스트 목적입니다. 아직 완공된 길이 아니고, 보완해야 할 점도 많아요. 국민 분들이 직접 걸어보고 나서 개선할 점을 전달해 주면 그걸 토대로 저희가 남은 2년 동안 열심히 더 길을 잘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건전한 백패킹 문화와 장거리 도보여행이 정착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팔봉산. 사진 속에서 8개의 봉우리를 찾아볼 수 있다.


일조를 위해 전문 백패커와 함께 직접 걸어보기로 했다. 민미정 여행작가와 문은숙씨다. 이번에 열린 길은 태안 1~4구간, 홍성 9~12구간, 울진·봉화 47~55구간이다. 길이 시작되는 곳, 태안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4구간부터 3구간까지 역으로 2개 구간을, 백패킹하며 걷는다. 첫째 날 야영지인 흥주사가 4구간 중간에 애매하게 있어 산을 조금 섞고자 5구간에 해당하는 서산 팔봉산 정상을 섞었다. 요컨대 팔봉산~흥주사 1일차, 흥주사~몽산포항 2일차다.
취재진은 아직 길이 개방되지 않은 10월 초에 별도의 허가를 받아서 탐방했다. 그래서 길은 한산했다. 도착한 팔봉산 어송리창포선주차장에는 차량이 1~2대밖에 없다.
"진짜 오랜만에 이런 배낭 메는데요?"
취사도구까지 야무지게 챙긴 배낭의 무게가 새삼스럽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배낭을 부르는 이름도 세대마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박짐, 땡짐, 박배낭이다. 물론 모두 은어고 옳은 표현은 '야영 배낭'이겠지만, 아무래도 발음의 맛은 떨어진다.



상옥리 가영현 가옥 앞 작고 아담한 연못을 지난다.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오른다. 동서트레일의 길 대부분은 둘레길 수준으로 험하지 않다. 등산로를 통하더라도 최소한만 경유하는 식이다. 팔봉산으로 오르는 길도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인 서태사까지 최대한 임도를 따르다가 도중에 숲길로 접어드는 식이다. 서태사는 자그마한 규모로 누런 사찰견 한 마리가 올라오는 등산객을 늠름하게 굽어보며 수호하고 있다.
"벌써 동서트레일 산행리본이 달려 있네요."
소리를 따라가니 파란색, 주황색의 띠가 나뭇가지에 곱게 묶여 있다. 2년 후면 이 띠를 따라서 서해안부터 동해안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것이다. 하늘을 덮고 잠을 자면서 말이다.
곰솔 가득한 금북정맥 숲 따라 야영장으로
그런 기대감을 품으며 팔봉산 8봉(319m)에 오른다. 팔봉산은 1봉부터 8봉까지 이름대로 8개의 봉우리가 남북으로 길게 솟아 있다. 팔봉산 산행은 이 능선을 주파하는 식으로 이뤄지지만, 동서트레일이 아니기에 다음으로 미룬다. 앙증맞은 8봉 정상석에 간단히 인사를 건네고 도로 길을 되짚어 내려온다.



팔봉산으로 오르는 숲길. 태안 구간에선 대부분의 숲이 곰솔이었다. 





팔봉산 8봉 정상 일원의 암릉 뒤로 태안 읍내가 펼쳐진다. 


이제 태안읍 행정복지센터까지 12.6km를 가리키는 동서트레일 이정표를 따라 마을길이다. 가을에 흠뻑 물든 논밭이 정겹다. 걷고 걸어도 풍경은 그대로인데, 냄새가 훅훅 바뀐다. 깨를 터는 집 옆에선 고소한 향이, 고추를 말리는 집에선 매콤한 향이, 마늘을 거둔 집을 지날 땐 알싸한 마늘향이 난다. 그 냄새에 이끌려 공간은 분명 팔봉면 어송리지만, 걷는 건 제각각의 고향인 음성, 제천, 충주의 시골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무궁화와 감나무가 가득한 마을길의 끝에 오석산 간이대피소란 공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또 다른 이름은 어은리 간이대피소다. 오석산으로 들어서는 백화산 산수길 시작지점 옆 공터다. 여기에 정자 2채와 평상이 하나 놓였다. 동서트레일에서는 이런 대피소에서만 취사나 야영을 할 수 있다.



오석산 간이 대피소.


"이거 정말 어색하네요."
국립공원 대피소가 아닌 곳에서, 산행하다가 취사를 하려니 머쓱하다. 결국 비화식을 메인으로 샤인머스캣과 토마토 위에 발사믹 글레이즈 소스와 부라타치즈를 올려 빵과 곁들여 먹었다. 그래도 불을 사용할 수 있는데 안 쓰긴 아쉬워서 물을 끓였다. 꿀을 타고, 차를 우리고, 커피를 내린다.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에 평지를 걸으며 식어버린 몸에 훅 생기가 돈다.
"여기는 컨디션 난조여서 갑자기 머물러야 할 때가 아니면 굳이 박지로 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먼저 두 가지 단점이 있어요. 사이트가 좁은 건 둘째 치고 바로 앞이 차가 자주 다니는 길이네요. 밤에 잘 때 무척 시끄러울 것 같아요. 또 나중에는 사이트 중앙을 덮고 있는 마른 풀은 좀 걷어내야 할 것 같아요. 버너의 불씨가 마른 풀에 튀진 않겠지만, 이 풀이 바람에 날려서 음식이나 버너의 불꽃에 닿을 수도 있겠네요."



팔봉산을 오른 후 오석산으로 이동하는데 심상치 않은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이제 오석산(169m)으로 오르는 숲길로 든다. 주변에 곰솔이 가득하다. 주로 바닷가에 자라는 소나무로 수피가 일반 소나무에 비해 검어서 '검솔'이라 부르다 곰솔이 됐다고 한다. 오석산은 마을 뒷산인데도 마치 깊은 원시성을 간직한 것 같은 분위기다. 좀 더 걸으니 산꾼들이 금북정맥임을 알려 주는 표지기들을 잔뜩 달아뒀다. 여기서 상옥리숲길 시점까지 쭉 정맥길이다.
작은 정자가 있는 오석산 정상의 조망은 영 시원치 않다. 그렇기에 앞서 팔봉산에서 한껏 푸른 바다와 황금들판이 어우러진 조망을 봐둘 필요가 있다. 그대로 쭉 치고 나가니 나무 계단으로 뚝뚝 마저 고도를 떨어뜨려 상옥리숲길 시점인 마을길에 닿는다.
시험대 오른 한국 백패킹 문화
나지막한 산 하나를 넘으니 금방 어깨가 뻐근하다. 이제 마을길을 따라 흥주사로 든다. 상옥리 가영현가옥은 도중에 둘러볼 만한 곳. 약 200년 전에 지어졌다는 조선 후기 부농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초가집으로선 매우 드물게 규모가 대단히 큰 편이라고 한다. 현재 주민이 살고 있으며, 우수 농촌체험학습장이기도 한 사과 과수원인 상옥농장이 바로 면해 있으니 조용히 구경만 하고 지나가야 한다.
"와 여기 너무 괜찮은데요?"
짧은 오르막으로 골짜기에 들자 바로 흥주사대피소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로 옆에는 산에서 개울이 흘러내리고, 텐트를 칠 수 있는 공간이 총 9동 있다. 포근한 잔디 속에 층마다 하나씩 넉넉하게 떨어진 점이 무척 마음에 든다. 다닥다닥 난민촌처럼 붙여놓는 야영장들이 보고 배워야 할 구성이다.



흥주사 대피소.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산림청 예약사이트 숲나들e에서 동서트레일 패스 발급 후 예약하고 이용해야 한다.


이제 드디어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는다. 오로지 풀벌레 우는 소리와 개울이 세차게 흐르는 소리뿐. 텐트를 치고 취사도구를 꺼낸다. 그간 백패킹할 때면 차갑게 식은 음식만 먹었는데 간만에 따뜻한 화식이 반갑다. 물론 예전 같은 난장은 벌이지 않는다. 남길 정도로 음식을 한가득 차리고, 주변에 아무렇게나 버리고, 술을 밤새 들이켜는 그런 문화 말이다. 화식은 최소화하고 비화식을 같이 곁들이기로 했다. 처치곤란인 고기 기름을 최소화하기 위해 버섯, 숙주나물을 준비해 함께 구워 먹는 방식을 택했다.
다른 백패커들은 이 길을, 이 야영장을 어떻게 걸을까? 텐트에 누워 그려본다. 과연 앞으로도 이 길과 야영지가 백패커들에 의해 깨끗하게 유지되고 관리될 수 있을까? 일단 다행인 건, 전면 예약제라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아무나, 아무 때나 와서 텐트를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백패킹 문화가 시험대에 오른다.



간이 대피소에서도 취사와 야영이 가능하다. 다만 '간이'란 이름이 붙은 곳들은 대부분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미비된 경우가 많다. 








©동아지도 제공





산행길잡이
모든 길이 뚜렷하다. 이정표도 많아서 길을 헷갈릴 우려가 전혀 없다. 어송리 일대 마을길을 통과할 때 계속 이리저리 돌고 돌아 조금 정신이 없을 뿐이다. GPS가 없어도 충분히 갈림길마다 이정표와 산행리본이 있어서 길을 찾아 갈 만하다.
체력적으로 부담스럽다면 동서트레일 5구간에 해당하는 팔봉산을 다음으로 미뤄두고 주차장에서 바로 오석산을 타면 된다. 오석산마저도 부담스럽다면 주차장에서 도내리 찻길과 마을길을 따라 흥주사로 가면 된다. 다만 이 경우 걷는 내내 숲길이 하나도 없다는 점은 감수해야 한다.



교통
서울 센트럴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태안 버스터미널까지 수시로 버스가 다닌다. 팔봉산 어송리창포선주차장까지 택시를 타도 좋지만 버스를 더 추천한다. 어송정류소까지 가는 버스 편이 아주 짧은 간격으로 운행하고 있고, 요금도 싸기 때문. 버스를 기다리면서 터미널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장을 보면 좋다. 어송정류소에서 팔봉산 어송리창포선주차장 까지는 1.5km 도보로 약 30분.
흥주사에 대피소서 숙박 후 태안터미널로 이동하는 건 택시를 추천한다. 상옥리까지 내려와서 990번대 버스를 타야 되는데 배차 간격이 너무 길거나, 너무 이른 아침(오전 7시 5분 첫차)에만 운행하는 경우가 많다. 택시를 타면 10분, 요금 1만 원쯤 나온다.
맛집&기타 팁(지역번호 041)
태안터미널에 내려서 식사를 하려면 하나로마트 가는 길에 국물집(675-1819)이 무난하다.
순대국, 뼈해장국, 나주곰탕 1만 원, 얼큰순대국, 육개장 1만1,000원 등. 특은 2,000~3,000원 추가. 깔끔하고 든든한 한 끼로 산행을 위한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하나로마트에서 미처 사지 못한 것이 있다면 어송정류소 근처 대문마트에서 보충할 수 있다. 흥주사 주변에는 마땅한 구매처가 없다. 또한 바로 위가 사찰이니 최대한 조용히 지내야 한다. 팔봉산주차장과 흥주사에 화장실이 있지만, 오석산 간이대피소에는 화장실이 없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