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카지노 위치 ┺ 스포츠분석 어플 ♥
페이지 정보
작성자 소보호재 작성일 25-12-20 02:47 조회 5 댓글 0본문
라이브스코어 ╀ BEE카드 ❡
릴게임끝판왕 바로가기 go !!
기자 admin@119sh.info미국 보스턴 NEC의 피아노학과장인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최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카페 '아트메이저'에서 아르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rte. Photo by 문덕관
보스턴 뉴 잉글랜드 음악원 피아노학과장 백혜선(60). 그 이름 앞에는 오랫동안 ‘한국 국적 최초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만 29세에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그는 세계 무대의 연주자이자 후학 양성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는 ‘스승’이자 ‘어른’이다.
릴게임황금성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한 청년의 에너지, 권위를 내려놓고 환한 미소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힘.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마주하면 그가 왜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인 보스턴에서 젊은 거장들의 구심점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무대 위 화려한 아티스트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배들의 길을 닦는 교육자,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 백혜선은 이 어려운 세 가 오리지널골드몽 지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서울에서 진행한 대면 인터뷰, 그리고 보스턴을 연결한 화상 인터뷰. 두 차례에 걸쳐 마주한 그는 ‘좋은 어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음악가였다.
보스턴 NEC 318호, 미래 음악가들의 둥지
미국 보스턴 NEC 캠퍼스 조던홀 온라인야마토게임 빌딩 3층에 위치한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연구실. 백혜선 제공.
지금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시계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뉴 잉글랜드 음악원NEC이 있다. 백혜선은 이곳의 피아노학과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NEC는 세계 최고 음악가들의 산실로 입지를 굳혔다. 한국예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던 손민수 교수가 이곳으로 합류했고, 스승을 따라 임윤찬이 날아들었다. 백혜선의 제자인 김세현은 지난해 롱티보 콩쿠르 1위라는 낭보를 전했고, 제19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에릭 루 또한 NEC 예비학교가 배출한 스타다. 신창용, 홍석영, 김송현 등도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NEC 캠퍼스 조던홀 빌딩 3층, 복도 끝 3 바다이야기합법 18호. 백혜선의 연구실이다. 반대편 끝에는 피아노학과의 ‘대모’ 변화경 선생의 방이, 그 옆에는 손민수 선생의 방이 자리한다. 전설의 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콩쿠르 ‘일타 강사’ 당타이선 등 거장들의 연구실이 모여 있다.
정작 백혜선의 방은 소박하다 못해 텅 비어 있다. 벽에는 흔한 그림 한 점, 화려한 장식품 하나 없다. 그저 좋은 피아노 두 대와 편안한 의자가 전부다.
“어떤 선생님들은 방을 아름답게 꾸며놓으시지만, 제 방은 그냥 연습실이에요. 누구든 와서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이죠. 제 삶이 좀 방랑자 같거든요. 20대 때는 집처럼 꾸미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공간도 언젠가 떠날 수 있는, 제자들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간을 ‘제자들의 연습실’로 내어주는 마음. 털털하고 소박한 강의실은 백혜선의 리더십과 꼭 닮았다.
백혜선 NEC 피아노학과장의 강의실 내부 모습. 백혜선 제공.
“내 자식처럼 남의 자식을”
백혜선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음악적 재능 못지않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났지만, 그 연결고리는 이익이 아닌 ‘선의’다. 그는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무조건 다 퍼줘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내 자식은 내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남의 자식을 정성껏 키우면, 결국 남들이 내 자식을 키워준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백혜선 학과장이 NEC에서 피아니스트 김세현을 레슨 중인 모습. 백혜선 제공
이러한 철학은 교육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NEC 피아노학과 교수진은 12명. 입학 경쟁률은 치열하다. 600명이 지원하면 합격자는 30명 남짓이다. 그중 백혜선은 올해 유독 많은 24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위에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학과 전체의 분위기가 결정됩니다.”
그의 리더십은 상처 주고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용기를 불어넣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섬세한 음악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악가들은 순수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이 같아요. 나를 위해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면 무한히 성장하죠. ‘네가 최고야’, ‘너 없으면 우리 학교 안 돼’라는 응원이 아이들의 공기를 바꿉니다.”
변화경 선생님이 레슨 중인 모습. 백혜선 제공.
물론 그 위에는 스승 변화경 선생이 있다. 백혜선은 “한국에 김대진 선생이 있다면 보스턴엔 변 선생님이 계신다”며 “건강한 비평과 날카로운 조언으로 음악가를 만드는 철학을 가지신 분”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백혜선은 그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변환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는 ‘열린 클래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승의 선한 영향력은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흘러 내려간다.
쉴 틈 없는 일상, 유일한 안식처는 집
겉보기에 화려한 학과장의 삶이지만, 일상은 고행에 가깝다. 매일 오전 6~7시에 기상해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는다. 행정 업무와 이메일 체크를 병행하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오후 1시쯤 학교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릴레이 레슨’이 시작된다.
백혜선의 레슨은 시간제한이 없기로 유명하다. 한 학생의 레슨이 길어지면 몇 시간이고 늦어지기 일쑤다. 밤 12시, 학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과가 끝난다. 끼니를 거르는 건 예사다.
“밤 12시에 문을 닫는 게 다행이죠. 아니면 밤새워 레슨했을지도 몰라요. 레슨이 끝나면 그제야 아이들을 데리고 보스턴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밥을 사 먹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에요.”
그에게 집은 단 하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집에서도 이틀 연달아 쉬어본 적이 없다. “제 소원은 집에서 하루 이틀 그냥 쉬는 거예요. 지난 4년간 한 번도 이틀 연달아 집에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영감의 원천, 책과 피아노
쉬지 않고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도 그가 아티스트로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공간은 어딜까. 그는 자택의 연습실을 꼽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40년 넘게 함께한 피아노,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책으로 빼곡한 곳. 통창 너머로 호수가 반짝이고 사계절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는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살아갈 힘을 차분히 쌓아나간다.
백혜선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예술가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스마트폰의 파편화된 정보가 아닌, 깊은 사유가 필요한 ‘책’을 귀히 여긴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은 그를 작가로 만들기도 했다. 2021년 그는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출간했다.
“영감을 받으려면 저도 리셋이 필요한데, 그건 책을 읽어야 가능해요. 책은 저자와 혼자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에요. 단순히 시각적 자극만 있는 매체와 달리, 글은 ‘이게 맞는 말일까’ 고민하며 읽게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의식하게 만들죠. 결국 독서를 하며 생각하고 상상하고 깨닫는 과정이 저에겐 가장 큰 휴식입니다.”
미국 보스턴 NEC의 피아노학과장인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최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카페 '아트메이저'에서 아르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rte. Photo by 문덕관
그는 음악을 ‘텍스트 해석’에 비유한다. 음악은 결국 음표라는 언어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악기 소리 자체가 아니라, 연주자의 정신과 영혼이 담긴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표를 완벽하게 쳐도 감흥이 없는 건 영혼 없이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음악가는 대본(악보)을 완벽히 이해해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어야 하죠. 정제된 의도가 들어갔을 때 비로소 소리는 음악이 됩니다.”
젊은 후배들을 향한 열린 찬사
지난해 11월 보스턴 심포니홀에서 열린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연주회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스턴의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총집결한 그 자리에서 백혜선은 “평생 본 적 없는 경이로움을 목격했다”고 했다. 임윤찬의 골트베르크는 매 순간 세상에 없던 음악이라고 했다.
“저 친구는 우주를 혼자 갖고 있구나. 무궁무진한 큰 세계를 살짝 맛보여준 거구나.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어요. 저 젊은 친구가 ‘음악을 다시 썼구나’ 싶어 경이로웠습니다.”
그는 임윤찬의 비상 뒤에 스승 손민수의 헌신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임윤찬이 날아다니지만, 그 날개를 달아준 건 손민수 선생이에요.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던 꼬마의 꿈이 이뤄진 거죠. 공연 후 손 선생에게 말해줬어요. ‘너는 살면서 할 도리를 다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해 큰일을 해냈다. 정말 축하한다’고요.”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제자 임윤찬이 함께 연주 중인 모습. NEC 제공.
그의 찬사는 임윤찬에 그치지 않았다. 조성진의 라벨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난곡難曲으로 꼽히는 라벨을 완벽에 가깝게 해석한 후배의 연주에 감탄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변화경 선생조차 “정말 잘한다”고 인정했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제자 김세현에 대해서도 “머리가 좋고 연구를 많이 하는, 피아노가 해방구였던 친구”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백혜선은 후배들의 성취를 경계하는 대신 그들의 ‘새로운 우주’를 존중하는 너른 품을 가졌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해요. ‘어디 한번 쳐봐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저 연주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대하면 그 사람의 음악 세계가 보입니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생각은 그만, 가슴으로 느껴라. 아름다움이 확 와닿아야 한다.”
좋은 사람, 위대한 아티스트, 그리고 모범이 되는 교육자. 백혜선은 보스턴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 세 가지 가치를 몸소 실현했다. 그리고 그의 선의는 많은 후배에게 보이지 않게 가닿아 그들의 길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미래의 피아니스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좋은 음악은 음표를 완벽하게 치는 데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과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음표라는 텍스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표현하느냐. 결국 음악은 여러분의 영혼이 반영된 목소리여야 합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보스턴 뉴 잉글랜드 음악원 피아노학과장 백혜선(60). 그 이름 앞에는 오랫동안 ‘한국 국적 최초의 차이콥스키 콩쿠르 입상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만 29세에 서울대 음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된 그는 세계 무대의 연주자이자 후학 양성의 중심에 서 있다. 현재 그를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단어는 ‘스승’이자 ‘어른’이다.
릴게임황금성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한 청년의 에너지, 권위를 내려놓고 환한 미소로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힘. 피아니스트 백혜선을 마주하면 그가 왜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중심인 보스턴에서 젊은 거장들의 구심점이 되었는지 알 수 있다. 무대 위 화려한 아티스트이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후배들의 길을 닦는 교육자, 그리고 무엇보다 ‘따뜻한 사람’. 백혜선은 이 어려운 세 가 오리지널골드몽 지 트라이앵글을 완성했다. 서울에서 진행한 대면 인터뷰, 그리고 보스턴을 연결한 화상 인터뷰. 두 차례에 걸쳐 마주한 그는 ‘좋은 어른’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음악가였다.
보스턴 NEC 318호, 미래 음악가들의 둥지
미국 보스턴 NEC 캠퍼스 조던홀 온라인야마토게임 빌딩 3층에 위치한 백혜선 피아니스트의 연구실. 백혜선 제공.
지금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시계는 보스턴을 중심으로 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심에 뉴 잉글랜드 음악원NEC이 있다. 백혜선은 이곳의 피아노학과장이다. 최근 몇 년 사이 NEC는 세계 최고 음악가들의 산실로 입지를 굳혔다. 한국예 릴게임바다이야기사이트 술종합학교에서 가르치던 손민수 교수가 이곳으로 합류했고, 스승을 따라 임윤찬이 날아들었다. 백혜선의 제자인 김세현은 지난해 롱티보 콩쿠르 1위라는 낭보를 전했고, 제19회 쇼팽 콩쿠르 우승자 에릭 루 또한 NEC 예비학교가 배출한 스타다. 신창용, 홍석영, 김송현 등도 이곳에 적을 두고 있다.
NEC 캠퍼스 조던홀 빌딩 3층, 복도 끝 3 바다이야기합법 18호. 백혜선의 연구실이다. 반대편 끝에는 피아노학과의 ‘대모’ 변화경 선생의 방이, 그 옆에는 손민수 선생의 방이 자리한다. 전설의 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 콩쿠르 ‘일타 강사’ 당타이선 등 거장들의 연구실이 모여 있다.
정작 백혜선의 방은 소박하다 못해 텅 비어 있다. 벽에는 흔한 그림 한 점, 화려한 장식품 하나 없다. 그저 좋은 피아노 두 대와 편안한 의자가 전부다.
“어떤 선생님들은 방을 아름답게 꾸며놓으시지만, 제 방은 그냥 연습실이에요. 누구든 와서 쓸 수 있는 열린 공간이죠. 제 삶이 좀 방랑자 같거든요. 20대 때는 집처럼 꾸미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 공간도 언젠가 떠날 수 있는, 제자들을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간을 ‘제자들의 연습실’로 내어주는 마음. 털털하고 소박한 강의실은 백혜선의 리더십과 꼭 닮았다.
백혜선 NEC 피아노학과장의 강의실 내부 모습. 백혜선 제공.
“내 자식처럼 남의 자식을”
백혜선의 주변에는 늘 사람이 모인다. 음악적 재능 못지않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사업가의 기질’을 타고났지만, 그 연결고리는 이익이 아닌 ‘선의’다. 그는 “자식을 키우는 사람은 무조건 다 퍼줘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내 자식은 내가 키우는 게 아니에요. 내가 남의 자식을 정성껏 키우면, 결국 남들이 내 자식을 키워준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백혜선 학과장이 NEC에서 피아니스트 김세현을 레슨 중인 모습. 백혜선 제공
이러한 철학은 교육 현장에서 빛을 발한다. NEC 피아노학과 교수진은 12명. 입학 경쟁률은 치열하다. 600명이 지원하면 합격자는 30명 남짓이다. 그중 백혜선은 올해 유독 많은 24명의 제자를 가르쳤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위에서 어떻게 하는지에 따라 학과 전체의 분위기가 결정됩니다.”
그의 리더십은 상처 주고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 대신 용기를 불어넣고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섬세한 음악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음악가들은 순수하고 어떤 면에서는 아이 같아요. 나를 위해 살고 싶은 욕구가 강하고, 누군가 관심을 가져주면 무한히 성장하죠. ‘네가 최고야’, ‘너 없으면 우리 학교 안 돼’라는 응원이 아이들의 공기를 바꿉니다.”
변화경 선생님이 레슨 중인 모습. 백혜선 제공.
물론 그 위에는 스승 변화경 선생이 있다. 백혜선은 “한국에 김대진 선생이 있다면 보스턴엔 변 선생님이 계신다”며 “건강한 비평과 날카로운 조언으로 음악가를 만드는 철학을 가지신 분”이라고 존경을 표했다.
백혜선은 그 가르침을 시대에 맞게 변환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문제를 공유하고 함께 해결하는 ‘열린 클래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스승의 선한 영향력은 제자들에게 고스란히 흘러 내려간다.
쉴 틈 없는 일상, 유일한 안식처는 집
겉보기에 화려한 학과장의 삶이지만, 일상은 고행에 가깝다. 매일 오전 6~7시에 기상해 무조건 피아노 앞에 앉는다. 행정 업무와 이메일 체크를 병행하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오후 1시쯤 학교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릴레이 레슨’이 시작된다.
백혜선의 레슨은 시간제한이 없기로 유명하다. 한 학생의 레슨이 길어지면 몇 시간이고 늦어지기 일쑤다. 밤 12시, 학교 문을 닫을 시간이 되어서야 비로소 일과가 끝난다. 끼니를 거르는 건 예사다.
“밤 12시에 문을 닫는 게 다행이죠. 아니면 밤새워 레슨했을지도 몰라요. 레슨이 끝나면 그제야 아이들을 데리고 보스턴 차이나타운으로 가서 밥을 사 먹입니다. 제가 유일하게 베풀어줄 수 있는 것이에요.”
그에게 집은 단 하나의 휴식처이자 아지트다. 하지만 그토록 사랑하는 집에서도 이틀 연달아 쉬어본 적이 없다. “제 소원은 집에서 하루 이틀 그냥 쉬는 거예요. 지난 4년간 한 번도 이틀 연달아 집에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영감의 원천, 책과 피아노
쉬지 않고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서도 그가 아티스트로서 에너지를 충전하는 공간은 어딜까. 그는 자택의 연습실을 꼽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40년 넘게 함께한 피아노,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책으로 빼곡한 곳. 통창 너머로 호수가 반짝이고 사계절이 흐르는 그곳에서 그는 피아노를 치고, 책을 읽는다. 그렇게 살아갈 힘을 차분히 쌓아나간다.
백혜선에게 독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예술가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스마트폰의 파편화된 정보가 아닌, 깊은 사유가 필요한 ‘책’을 귀히 여긴다. 텍스트에 대한 애정은 그를 작가로 만들기도 했다. 2021년 그는 에세이 <나는 좌절의 스페셜리스트입니다>를 출간했다.
“영감을 받으려면 저도 리셋이 필요한데, 그건 책을 읽어야 가능해요. 책은 저자와 혼자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에요. 단순히 시각적 자극만 있는 매체와 달리, 글은 ‘이게 맞는 말일까’ 고민하며 읽게 됩니다. 정신을 차리고 의식하게 만들죠. 결국 독서를 하며 생각하고 상상하고 깨닫는 과정이 저에겐 가장 큰 휴식입니다.”
미국 보스턴 NEC의 피아노학과장인 백혜선 피아니스트가 최근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카페 '아트메이저'에서 아르떼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arte. Photo by 문덕관
그는 음악을 ‘텍스트 해석’에 비유한다. 음악은 결국 음표라는 언어를 표현하는 작업이다. 악기 소리 자체가 아니라, 연주자의 정신과 영혼이 담긴 ‘목소리’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음표를 완벽하게 쳐도 감흥이 없는 건 영혼 없이 책을 읽는 것과 같아요. 음악가는 대본(악보)을 완벽히 이해해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가 되어야 하죠. 정제된 의도가 들어갔을 때 비로소 소리는 음악이 됩니다.”
젊은 후배들을 향한 열린 찬사
지난해 11월 보스턴 심포니홀에서 열린 임윤찬의 골드베르크 연주회 이야기를 꺼내자 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보스턴의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총집결한 그 자리에서 백혜선은 “평생 본 적 없는 경이로움을 목격했다”고 했다. 임윤찬의 골트베르크는 매 순간 세상에 없던 음악이라고 했다.
“저 친구는 우주를 혼자 갖고 있구나. 무궁무진한 큰 세계를 살짝 맛보여준 거구나. 너무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어요. 저 젊은 친구가 ‘음악을 다시 썼구나’ 싶어 경이로웠습니다.”
그는 임윤찬의 비상 뒤에 스승 손민수의 헌신이 있었음을 강조했다. “임윤찬이 날아다니지만, 그 날개를 달아준 건 손민수 선생이에요.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던 꼬마의 꿈이 이뤄진 거죠. 공연 후 손 선생에게 말해줬어요. ‘너는 살면서 할 도리를 다했다. 한국을 넘어 세계를 대표해 큰일을 해냈다. 정말 축하한다’고요.”
피아니스트 손민수와 제자 임윤찬이 함께 연주 중인 모습. NEC 제공.
그의 찬사는 임윤찬에 그치지 않았다. 조성진의 라벨 연주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니스트들에게도 난곡難曲으로 꼽히는 라벨을 완벽에 가깝게 해석한 후배의 연주에 감탄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변화경 선생조차 “정말 잘한다”고 인정했을 만큼 깊은 감동을 받았다. 제자 김세현에 대해서도 “머리가 좋고 연구를 많이 하는, 피아노가 해방구였던 친구”라며 애정을 드러냈다.
백혜선은 후배들의 성취를 경계하는 대신 그들의 ‘새로운 우주’를 존중하는 너른 품을 가졌다. “듣는 사람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해요. ‘어디 한번 쳐봐라’ 하는 태도가 아니라, 저 연주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들어보자는 마음으로 대하면 그 사람의 음악 세계가 보입니다.” 그는 지금도 제자들에게 강조한다. “생각은 그만, 가슴으로 느껴라. 아름다움이 확 와닿아야 한다.”
좋은 사람, 위대한 아티스트, 그리고 모범이 되는 교육자. 백혜선은 보스턴이라는 낯선 땅에서 그 세 가지 가치를 몸소 실현했다. 그리고 그의 선의는 많은 후배에게 보이지 않게 가닿아 그들의 길을 밝히고 있다. 끝으로 미래의 피아니스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좋은 음악은 음표를 완벽하게 치는 데 있지 않고, 사람들에게 어떤 자극과 느낌을 주는 것입니다. 음표라는 텍스트를 얼마나 잘 이해하고 표현하느냐. 결국 음악은 여러분의 영혼이 반영된 목소리여야 합니다.”
조민선 기자 sw75jn@hankyung.com
관련링크
- http://12.rqg927.top 0회 연결
- http://62.rvn821.top 0회 연결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