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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지만지금도 남아 있는 오수망루(오포대). 정오마다 사이렌을 울렸다. ‘거리의 철학자’ 오빠꾸 선생은 이곳에서 많이 어슬렁거렸다고 한다.


오빠꾸는 누구에게도 적선을 강요하지 않았다. 가게 앞에서 잠시 서서 기다리지만 주인이 바쁘거나 눈길을 주지 않으면 흔연히 자리를 떠나 다른 가게로 향했다. 누가 얼마를 주든지 돈을 세는 법도 없었고, 주는 물건이 허름해도 불평하는 법도 없었다. 상인들도 그에게 돈이나 물건을 건네는 것을 당연하고 마땅한 일로 여겨, 귀찮다거나 짜증 한번 내지 않았다. 오수라는 고을이 그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오수는 한 시절 면 소재지로는 전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2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전쟁 직후엔 지리산 등에서 벌목한 통나무들을 경 율계산 향 각지로 실어내는 바람에 역 인근에 목재가 그득그득 쌓여 있었고, 제사공장이 번창하여 이 작은 소읍에 기생집이 네 곳이나 있었다 한다.
오수는 조선조 역참과 찰방이 있었듯, 이리역 버금가는 교통의 요지였다. 이곳을 거쳐야만 순창, 장수, 남원, 곡성, 구례 등을 갈 수 있었다. 오수역이 큰 역이던 시절, 오수장은 근방에서 가장 컸다. 이 여가 만한 고장에서 저 작은 한 사람을 안아 품지 못한다면 말도 안 된다며 누구도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그런 건 새삼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그가 오면 크게 착한 일을 한다는 의식도 없이 적은 돈을 건네고 음식을 차려주고 과일을 쥐여주곤 했던 것이다.
“근데 왜 갑자기 오빠꾸냐?”고 내가 묻자, 친구는 “아니 오수 사람치고 오빠꾸 모르 4월6일 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서”라고 했다. “아니 젊은이들은 알 리가 없잖아?” “그렇지” “그 양반이 세상 뜬 지가 언젠데?” 중학교 2학년 때쯤 그가 세상을 떠났다는 얘기를 들었다. 늘 시장에 나오던 사람이 이틀이 지나도 보이지 않자 누가 움막 문을 열었더니 자는 듯 누워 숨을 거두었더란다. 내가 다니던 교회의 청년회에서 그의 장례를 치렀다. 나도 형들을 아파트 매매 대출 한도 따라 그 눅눅한 방에 들어갔다. 약간 역한 냄새가 났고 벽에는 옷가지 두어 점이 걸려 있었다. 덮은 꾀죄죄한 이불 말고는 윗목에 덩그러니 놓인 궤짝(고리짝) 하나가 세간의 전부. 장의사를 불러 시신을 염해 모시고 방을 치우기 위해 궤짝을 여니, 잡동사니 한편으로 바짝 마른 누룽지(깜밥)가 제법 쌓여 있었다. 그게 오빠꾸의 유일한 ‘저금’이었을 터. 그 누런 전세금담보대출 누룽지를 보며 어린 내 마음에도 여러 생각이 오고 갔던 것 같다.
그이가 떠나신 지 50년이 훨씬 넘었다. 그를 아는 사람들도 이제는 거개 육십 줄을 넘겼다. 별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단한 사건을 일으킨 사람도 아닌데,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뇌리에 새겨져 우리 공동의 기억이 되어 있는 오빠꾸, 그이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 나누며 우리가 다름 아닌 ‘오수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나는 그 어렵고 가난한 시절, 그 속에서도 우리 고장 오수가 가지고 있었던 따뜻한 체온을 그이에 대한 추억을 매개로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작고 힘없고 어려운 사람을 그냥 사람으로 보고 사람으로 대우하던 삶의 온도(溫度), 아프고 절박한 사람에게 비록 얼마 되지는 않더라도 자신의 품을 벌려 바람을 막아주려고 했던 사람 냄새나는 공간을 떠올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때 오수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어. ‘너는 너고 나는 나가 아닌 우리가 살고 있었어’라고 생각하게 하는 기억의 매듭, 아무 가진 것이 없었지만 이웃에 대한 믿음 하나로 서두르지도 불안하지도 않게 그럭저럭 자신의 한 삶을 나름대로 꾸려낸 ‘거리의 철학자’ 오빠꾸 선생. 요즘도 가끔 옛날 이의원 자리 옆 붉은 벽돌로 지어 올린 오포대 옆을 지나노라면 그 구석 어디에 오빠꾸 선생이 졸고 있을 것 같아 두리번거릴 때가 있다. 우리 기억 속에 살아 있는 ‘오수의 디오게네스’ 오빠꾸 선생. 당신이 가신 거기 그 나라에서도 그렇게 한가하신지. 그리운 오빠꾸 선생의 명복을 빕니다.
오동영(임실 오수면 밤드내마을 정착·전직 국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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