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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화예요.”
할리우드 공포 영화 ‘웨폰’은 1980년대 말 한국 초등학생을 떨게 했던 도시 전설 ‘홍콩할매귀신’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실화라고 주장하는 정체 모를 소녀의 첫 내레이션부터 그렇다. 너무 비현실적인데 왠지 실제 있었을 것만 같은 괴담. 이야기는 이렇다. 미국의 한 교외 마을, 초등학교 같은 반 학생 18명 중 17명이 새벽 2시 17분에 일제히 어디론가 사라진다. 비행기 날개처럼 두 팔을 45도로 벌린 채 어둠 속으로 달려간 아이들은 한 달째 아무런 소식이 없다. 아이들은 어떻게 된 걸까.
15일 개봉하는 잭 크레거 감독의 신작 ‘웨폰’은 깊은 새벽 연금복권 에 갑자기 사라진 아이들에게 얽힌 비밀을 찾아가는 미스터리 공포 스릴러다. 감독은 영화 ‘펄프 픽션’처럼 한 사건을 여러 인물의 시점으로 쫓아가며 퍼즐을 완성한다. “우리 동네에서 2년 전 있었던 일”이라는 내레이터의 간략한 사건 설명에 이어 학부모들이 가장 의심하는 담임 교사 저스틴을 시작으로 실종된 아이의 아버지 아처, 저스틴의 전 연인이자 경찰인 폴, 금리동향 좀도둑 제임스, 교장 마커스, 반에서 유일하게 남은 아이인 알렉스의 이야기가 차례로 펼쳐지면서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다.



영화 '웨폰'에서 실종 학생들의 담임 교사 저스틴 역을 연기한 줄리아 가너.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우리은행 학자금대출 ‘웨폰’은 공포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미스터리를 강조하면서 할리우드 공포 영화의 전통적 흐름에선 비껴 나 있다. 등장인물의 갑작스러운 출현과 과장된 음향으로 관객을 놀라게 하는 뻔한 수법이나 쓸데없이 까불다 죽음을 자초하는 캐릭터 같은 장르적 클리셰는 찾아보기 어렵다. 심지어 극 전반부의 가장 공포스러운 순간마저 충격 요법보다는 긴장과 궁금 전세보증금 압류 증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추진한다. 배우 겸 코미디언으로 출발한 감독의 이력답게 약간의 유머를 가미한 결말도 관객의 허를 찌른다.
전작인 ‘바바리안’(2022)을 400만 달러에 제작해 세계적으로 4,500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크레거 감독은 이번에도 3,800만 달러를 투입해 개봉 두 달 만에 2억6,62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1억 예금 이자 공포 영화의 대가로 주목받고 있다. ‘웨폰’은 ‘무기’를 뜻하는 제목과 같은 반 아이들이 실종된다는 설정 때문에 미국에선 학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은유가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감독은 이에 대해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어떤 해석이든 맞다고 본다”고 했다.



영화 '웨폰'에서 실종 아동의 아버지 아처 역을 맡은 배우 조시 브롤린(왼쪽)과 잭 크레거 감독.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웨폰’이 흥미로운 건 이처럼 관점에 따라 여러 해석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약물이나 마약 중독으로 인해 무너지는 가정과 지역 공동체, 그 안에서 희생당하는 아이들을 떠올리는 관객이 있는가 하면 2021년 미국 의회 폭동이나 올 초 우리나라 서부지법 폭동처럼 현대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가 되는 정치·종교적 ‘사상’을 연상하는 관점도 있다. 실제로 크레거 감독은 한 인터뷰에서 “극중 알렉스와 부모가 등장하는 마지막 부분은 자전적인 면이 있는데 나는 지난 10년간 술을 끊었지만 알코올중독자였고 아버지는 간경화로 돌아가셨다”면서 “외부 존재인 술이 알렉스와 부모의 관계를 바꿔놓는다는 은유는 중요치 않고 관객이 재미있게 보면서 각자의 시각대로 해석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공포 영화는 요즘 상황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구”라는 그의 차기작은 ‘레지던트 이블’이다. 동명의 유명 게임에 헌사를 바치는 작품으로 기존의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와는 무관한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다.
128분. 청소년 관람 불가.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