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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배우 이병헌, CJ ENM 제공



[파이낸셜뉴스] 박찬욱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실직한 가장 만수 역을 완벽하게 해낸 배우 이병헌이 “만수를 어떻게 설득력 있게 연기할지가 가장 큰 숙제였다”고 말했다.



"취직하려고 경쟁자 제거? 관객 설득 제 숙제"

셀수있는명사'어쩔수가없다'는 경쟁이 불가피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내 것을 지키기 위해 경쟁자 제거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된 한 남자의 고군분투를 세련된 미장센과 아이러니한 유머로 풀어낸 영화. 이병헌은 24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나 “감독님은 해고당한 만수가 살인을 하는 것과 관련해 영화적 장치라고 말씀했지만 배우인 저로선 관객이 ‘저 정 고금리 적금 도면 어쩔 수 없지’라고 공감할 수 있도록, 그 감정의 과정을 설득하는 게 숙제였다”고 떠올렸다.

“남들 보기엔 ‘중산층의 삶을 포기해야 하는 정도’의 위기이지만, 당사자인 만수는 세상 모든 걸 잃는 듯한 절망감을 느낀다”는 것이 그의 부연 설명이다.
이병헌은 또 만수 캐릭터에 대해 “겉으로는 다정 저축은행 비과세 한 아버지지만 은근히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면모가 있다”며 “오늘날 젊은 세대가 보면 ‘꼰대 같다’고 느낄 수도 있는 인물”이라고 분석했다. 만수의 마초적인 면모는 돌이켜보면 영화 도입부 마당에서 콧수염을 기른 채 고기를 굽는 모습에서도 다소 우스꽝스럽게 슬쩍 드러난다.
이병헌은 이날 콧수염 분장과 관련된 촬영 비화를 들려주며 “원래 스 채린 티브 맥퀸 스타일과 매즈 미켈슨 스타일을 테스트했는데, 감독님이 맥퀸 스타일을 선택한 것”이라며 "하와이언 셔츠를 입고 콧수염을 기른 만수의 모습이 마치 남미 마약 카르텔 보스 같아 전 이상했는데, 감독님은 오히려 재미있어 했다”고 말했다.
만수의 폭력성은 실직 후 자신의 취미인 분재를 할 때 뭔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나뭇가지를 거칠게 청약저축 꺾는 행동에서도 드러난다. 또 아내 미리의 입을 통해서도 전달된다. 부부 싸움을 할 때 미리는 과거 만수가 자신과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던 일을 언급한다. 결과적으로 만수는 가장으로서 자기 희생적인 행동을 하지만 그 독단적이고 극단적 선택은 결국 아내를 범죄 방조범으로 만드는 아이러니한 결과를 낳는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한 평론가가 콧수염을 한 만수의 모습을 찰리 채플린에 빗대었어요. 만수가 자동화된 공장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모던 타임즈’속 채플린을 떠올리게 했다는 거죠. 감독님도 그 평을 듣고 애초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흥미로워하셨죠."


"박찬욱 감독, 제 의견 80% 이상 반영..당혹스럽기도"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흥행 배우 및 감독으로 거듭난 이병헌과 박찬욱 감독은 ‘쓰리, 몬스터’이후 20년 만에 이번 영화로 재회했다. 이병헌은 “감독님은 여전히 배우와 스태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며 “이번에는 심지어 농담처럼 던진 아이디어까지 80% 이상 반영하려 해서 오히려 내가 말을 줄여야겠다 싶을 정도였다”고 웃었다.

촬영 현장은 즐거웠다고 한다.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지만, 감독님과 농담을 주고받는 시간 덕분에 분위기가 늘 유쾌했다”며 “그래서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배우 이병헌, CJ ENM 제공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배우 이병헌, CJ EN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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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에 모든 장면을 세밀하게, 예술적으로 통제하는 박찬욱 감독과의 촬영은 인내심이 많이 요구되기도 했다. 특히 대사의 고저장단을 세밀하게 디렉팅해 배우들이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이병헌은 “저는 국어를 좋아하고 잘했던 편이라, 고저장단 지적은 상대적으로 덜 받은 편”이라며 웃었다. 이어 “만약 그 부분까지 지적을 받았다면 아마 면접 장면 촬영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농담을 던졌다.
“긴 대사를 소화하면서 동시에 인물이 겪는 수많은 감정을 표현해야 했다. 충치 통증 때문에 이가 욱신거리고, 햇빛이 눈부셔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기려 하고, 다리는 계속 떨리는데 손으로 억지로 눌러 참아내는… 이런 모든 디테일이 지문 속에 다 들어 있었다. 대사를 완벽히 숙지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만 이런 행동들을 동시에 신경 쓸 수 있었다.” 그는 “다른 장면보다 훨씬 많은 집중과 연습이 필요했다”며 “그래서 지금도 그 장면을 다시 보면 웃음이 나올 정도로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고 회상했다.
극중 폭소를 자아냈던 춤 장면 촬영 비화도 들려줬다. 앞서 손예진은 그 장면에서 자신은 몇 달간 맹연습을 했는데, 이병헌의 즉흥 춤이 자신의 춤을 압도했다며 속상해 했다.
이병헌은 “예진 씨는 손동작까지 섬세하게, 아주 멋지게 춤을 췄다. 반면 나는 아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군중 속 리듬에 맞춰 춤을 추며 조금씩 다가가는 설정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실제로 6~7테이크 정도 촬영했는데 매번 다른 춤이 나왔다. 그냥 그 순간 음악과 분위기에 몸을 맡긴 것”이라고 덧붙였다.
촬영 후 모니터를 보면서는 또 다른 깨달음도 얻었다. 이병헌은 “김혜자 선생님이 영화 ‘마더’ 마지막 장면에서 추던 춤과 비슷하더라”며 “그 영화가 내 안에 깊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동작이 튀어나온 것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AI와 고용 불안, 저도 느껴요"

영화가 다루는 ‘고용 불안'이나 '실직의 공포’는 배우 개인의 고민과도 겹친다. 이병헌은 “저나 박 감독님, 손예진 씨 모두 지금은 운 좋게 작품을 선택하는 위치지만, 동료 배우나 감독들 가운데는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이들이 많다”고 했다.

AI는 이번 현장의 화두였다. 그는 자신뿐 아니라 동료 배우의 합성 영상을 처음 봤을 때 받았던 충격을 떠올리며 "단순히 재미있다고 웃으며 봤던 합성 영상이 알고 보니 동료가 직접 찍은 게 아니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며 “그때 정말 소름이 끼쳤다”고 회상했다. 물론 자신의 얼굴이 합성된 영상도 본 적 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씨와 제가 나오는 장면이었는데, 마치 브로맨스처럼 해놨더라. 처음엔 '내가 이걸 어디서 찍었지' 그랬다가 '안돼' 소리 질렀다"고 돌이켰다.
이병헌은 “AI는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 됐다”며 “할리우드가 미리 고민했던 것처럼 우리 역시 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올해는 이병헌의 스크린 데뷔 30주년이기도 하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 MC를 맡으면서 내 영화 인생과 부산영화제 역사가 비슷한 시간을 걸어왔다는 걸 실감했다”며 “스스로 수고했다고 토닥이면서도 앞으로도 관객이 계속 나를 원할까 하는 불안도 생긴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속 배우 이병헌, CJ ENM 제공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