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턴, 자임할 것인가 거부할 것인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웨딩포리 작성일 25-10-20 21:27 조회 2 댓글 0본문
이혼재산분할 스피박 스캔들.” 한겨레21 제1581호에서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은 인도의 페미니스트 철학자 가야트리 스피박의 한국 방문을 둘러싼 과열된 논란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의 말대로 가히 ‘스캔들’이라 부를 만한 이 사건은 ‘스피박 논쟁’이기보다 한국의 지식장, 즉 우리 사회의 지식 생산과 소통 구조에 대한 또 하나의 캐리커처에 가까웠다.
박동수 편집장의 글에 이어 나는 스피박이 한국에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소개하려고 한다. 이는 “왜 스피박을 불렀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개인적 답변이기도 하다. 나는 스피박을 초청한 비판적섬이론학회를 공동주최한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소속으로, 그의 한국 체류 열흘 동안 가까이에서 일정을 함께했다.(이 글을 읽을 때 ‘필자의 위치’를 예민하게 인식하기를 바란다.)
스피박은 “서발턴(하위 주체)은 말할 수 있는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으로 잘 알려져 있다. 1988년 출간된 동명의 논문은 유럽의 남성 철학자인 푸코와 들뢰즈를 비판하며 시작된다. 그들은 한 대담에서 노동자들이 지식인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으며, 알고 있는 것을 아주 분명하게 표현한다”고 주장했다. 스피박은 이를, 서발턴을 대신해 말할 수 있다고 자임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복화술”이라고 꼬집는다. 이런 낭만화는 남반구의 서발턴, 특히 전지구화, 금융 자본주의, 노동분업, 가부장제 등 중첩된 구조적 폭력과 복잡한 관계를 맺는 남반구 여성이 직면한 억압과 침묵의 상황을 간과한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